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히 토프 (문단 편집) == 패전 이후의 삶 == [[포로|전쟁포로]] 신세가 되어 노르웨이의 [[수용소]]에 투옥되었던 에리히 토프 [[중령]]은 뜻밖에 8월에 석방되었다. 아무것도 없는 무일푼의 민간인으로 돌아간 그는 [[1946년]]부터 고향으로 되돌아가 하노버 공과대학에서 건축 수업을 받고 [[건축가]] 생활을 시작하며 생계를 유지했지만, 예전 드넓은 바다를 누비며 항해하던 군시절 기억을 그리워했다. 그렇게 기회를 노리다가 재건된 서독 해군(Bundesmarine)에 [[1958년]]에 복직된 에리히 토프는 과거의 전투와 지휘 경험을 인정 받아 서독 해군 각부대 참모장과 [[북대서양 조약 기구]] 군사위원회 수석 참모장을 거치며 승진을 거듭했고, 나중에는 해군 [[소장(계급)|소장]]까지 진급해 [[제독]]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. 아마도 과거 나치당원 경력만 아니었다면 그 이상의 고위직까지도 충분히 넘보았을 인물로 손꼽혔던 그는 [[미국]]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서독 해군의 재건에 몸을 바쳤다. 그 공로로 독일 연방공화국 최고 등급의 훈장인 [[독일 공로훈장|대십자 훈장]]을 수여받은 그는 [[1969년]]에 퇴역했다. 군복을 벗은 후에 토프는 해군 관계 업무로 [[조선소]]나 공업회사의 고문으로 활동하다가 [[2005년]]에 쥐센(Süßen)에서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. [[분류:제2차 세계 대전/군인]][[분류:유보트 함장]][[분류:하노버 출신 인물]][[분류:1914년 출생]][[분류:2005년 사망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